가족들을 유학을 보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한국사람은 그냥 한국에서 사는게 가장 좋지 않을까 ?'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왜냐면 일단 말(言)이 잘 통하고,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衣食宙) 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어릴때부터 배워온 흔히 말하는 생활패턴과 사고방식이 한국에서의 그것에 대부분 최적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인의 2-3달간의 캐나다생활과, 가족들의 1년 가까운 캐나다 유학생활을 엿보면서 부터, 그 생각에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막연히 캐나다가 선진국이니 거기가 더 살기 좋겠지 ? 가 아니라, 보다 더 진지하게..
외국에서 살게 될 경우 가장 먼저 걱정하는것은 언어의 장벽.
본인은 학창시절 영어성적은 항상 우수했었다. 지금도 나름 영어를 평균이상은 한다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교과서적인 영어, TOEIC 에서나 나올법한 제법 알아들을수 있는 속도의 또박또박 발음하는 영어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캐나다에 잠시 거주하면서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톤(Tone) 의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답답함을 느낀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이들 학부모 모임에서 주위 Canadian 학부모들이 얘길 하는데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웃으면서 알아듣는척 할때의 그 답답함, 휴대폰 통신사나 인터넷설치대리점, 또는 Community Centre 등의 고객센터를 통해 행정적인 처리를 위해서 뭔가 물어보고 싶은데, 영어회화를 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주눅들어 전화를 하지 못하고 이메일로 처리할수 밖에 없는 그 답답함을 겪다 보면,, '"ㅜ.ㅜ 한국이 그리워~ "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Canadian 인터넷 설치기사로 부터 올 전화를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 "Are you Internet ?" 이라고 말했던 순간을 기억하면, 아직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2015/06/14, 영어라고는 단어 몇개만 알던 둘째, 영어책을 이제 지겨워 하지 않고 곧잘 읽는다. 언제부터인가 영어로 된 DVD도 재미있게 감상한다. 불과 몇개월사이의 변화이다. 언어의 장벽은 그야말로 시간과 개인의 노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한것이다. 다만 그 극복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사람마다 다를뿐)
하지만 되집어 생각해보면 처음 외국생활을 접하는 사람에게 그러한 과정은 당연한 것이다. 적응단계에서 일시적인 겪는 통과의례일뿐일 것이다.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한 Realtor 의 경우 캐나다 생활이 10년째 였는데, 그 어떤 외국사람과도 의사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어 보였고, 오히려 나 같은 토종 한국사람이 보기에는 원어민의 대화로 느껴질정도로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걸 볼 수 있었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토론토 North York 근처에만 해도, 다양한 형태의 한인들이 캐나다에 정착하고 살고 있는데, 그 들이 원어민과 같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영어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두렵거나 어려워서 생활의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것 같았다. 이러한 영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두려움과 장벽은 결국 개인의 노력과 시간이 충분히 해결해 주는 부분이라, 영어를 잘하는 사람만이 외국에서 살수 있는것도 아니고, 영어를 못하는 한국사람이 꼭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진 않는것 같다.
그러면 왜 한국사람이 한국에서 사는게 좋을까 ? 의식주 ? 사고방식이며 생활패턴의 문제 ? 어떤 Factor 를 고려해 보더라도 대부분 시간이 해결해 주거나 적응만 하면 문제가 없는 것들이고, 한국에서 일정기간의 교육과 집단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서양에서의 학습과 집단생활에 적응 못할 이유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인적 Network 나 가족/친지들과의 관계 ? 흔히 많은 사람들이 외국 이민생활을 떠올리면, 한국의 친구들, 친지들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아무도 모르는 외지에서 외롭게 살아야 하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나역시 그렇게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과연 한국에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러한 친구들/친지들과 함께할 수 있으며, 그 들과 어떠한 밀접한 유대관계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
나의 가족의 경우에는 캐나다 그 넓은 땅덩어리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명도 없는 상태에서 유학을 간 케이스이다. 단기간 거주하게 될 민박집 주인장 전화번호만 휴대폰에 저장해둔채로 토론토 피어슨공항에 네명의 가족이 도착했을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크고 하얀 백지가 나한테 주어져서 뭔가 그림을 그려가야 하는,)
(2014/08/23, 한국에서의 생활을 잠시 접고, 아빠/엄마 따라와서 처음으로 외국땅을 밟은 연주/연준이)
그런데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기간동안,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끼리 외국와서 겪는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 겪고 서로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에서 살때 보다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주말시간을 보내는 인적 network 이 생겼으며, 아이들의 경우에도 한국에서 생활할때 보다 많은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가져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같이 지내는 한 친구(현구)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서, 그냥 한 가족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타지에서 겪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상부상조하기 위해 자연스레 엮어진, 특수한 환경하에서 만들어진 인적관계라고 애써 폄하 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들과 치밀한 계산하에 만나거나 이해관계가 맞을 때만 만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경우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같이 데리고 놀아주기도 하고, 서로의 집안일을 챙겨주기도 하고 밥도 먹여주는 일도 있다. 같이 놀러다닐때에는 알아서 역할분담해서 즐겁게 놀러다니기도 하고, 남의 아이 발도 씻겨 주는등, 짧은 몇개월의 시간만에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친척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이웃사촌' 이 생긴 것이다.
(2015/05/02, 가족같은 현구랑 함께)
캐나다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에서 살때와는 다르게, 이웃에 사는 그들은 나 또는 나의 가족들과 경쟁을 해야하는 상대이거나, 비교할 대상이라기 보다는,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의식이 어느새 머리속에 자리잡은 것이다. 한국에 있을적에 친구보다 뭘 못한다는 게 느껴지면 속상해 하던 아이들이,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그들과 경쟁하기 보다는 서로 선물을 챙겨주고 싶고, 집에 초대하고 싶은 그야말로 친구같은 친구들을 만든 것만 봐도 그렇다.
(2015/06/14, 캐나다에서 만난 친구인 인지 생일날)
한국에서의 초등학교생활 몇년간 단짝친구 만들기 어려웠던 아이들이, 캐나다 생활 2-3달만에 손을 꼭잡고 다니는 친구를 사귄것은 물론이거니와,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는 일도 일상 다반사가 되버렸다. 큰아이와 둘째아이 모두 Canadian 단짝친구를 만들면서, 그 들이 아이들의 훌륭한 영어 Tutor가 되어준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구정연휴때 잠시 방문해서 현지친구인 Sophie 랑 같이 영어로 대화하는 큰아이를 봤을때 말투 (영어발음, 대화속도등) 가 너무 비슷해서 놀랄정도 였다. 몇개월이 지난 요즘은 큰아이(연주)가 Original Canadian 들에게 거꾸로 문법과 철자를 가르켜 주고 있다고 하니,,,
(2015/02/17, 큰아이 연주의 같은반 단짝친구인 소피와 함께, 영어 회화 선생님 역할을 훌륭하게 해준 고마운 친구이다. 한국에서 어학원을 다닌터라 연주는 거꾸로 Canadian 친구들에게 문법과 철자를 교정해주는 선생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인종에 상관없이 친해지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어른들의 경우 그 Network 의 한계, 주로 Original Canadian 들과의 유대관계 (사실 캐나다에는 수많은 동양인들이 살고 있어서 본인이 스스로 벽을 쌓고 살지 않는 이상 Canadian 들과의 유대관계를 맺는데 한계는 별로 없어 보이긴 하다) 는 일부 있을지언정, 과거와 달리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고 정보를 얻기가 쉬운 요즘 세상에 주변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해서 생활의 큰 불편함을 겪지는 않을것 같다. 오히려 한국에서 주말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낼수 있는 피가 섞이지도 않은 이웃사촌을 만들기란, 외국보다 더더욱 쉽지 않을것 같다. 사실 현재 내가 거주하는 (한국의) 아파트단지내에서 또는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의 동창 학부모와 말을 섞어본 경험은 거의 전무(全無)하다.
잠시 가족 방문차 구정연휴기간에 캐나다에 가서 나홀로 한국 돌아오기 전날, 큰아이 같은반 친구엄마로부터 초대받아 근사한 떡국 과 디저트로 식사 대접을 받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내가 언제 한국에 살면서 아이들 친구의 학부모 친구집에 초대받아 식사한번 대접 받은적이 있었던가 ?
(2015/02/19, 귀국하기 전날, 날 위해서 창완이네 엄마가 구정이라고 떡국대접을 해 주신날)
그럼 친척들과의 관계는 ? 물론 해외 거주하다 보니 시댁,처가 부모님을 찾아뵙는 횟수는 줄어들수 밖에 없지만, 거리가 멀다 하여 부모님과의 교류가 끊기지는 않는다. 그리고 부모님들/친척들과의 관계가 소원해 진다 하여, 남은 인생을 어디서 보낼것인가 하는 의사결정의 큰 요소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쉽기는 하겠으나 필요한 경우 IT기술의 도움을 받아 그 유대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져갈수 있는 방법 또한 많다. 그리고 부모/친지들의 존재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존재인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냉정하게 말해서 그들이 나와 나의 가족들의 행복을 책임질 사람들은 아니다. 도움을 줄수는 있을지언정...
막상 아이들과 배우자를 유학을 보내고 나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꼭 한국에 살아야 하는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막연히 불편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시간과 어느정도의 노력이 해결해 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디서 사느냐 보다, 이 고민의 가장 큰 핵심은 어/디/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것이 더 행복할까 ? 가 아닐까.. 내가 내린 고민의 결론은,, 막연히 캐나다에서 살면 더 행복하겠지 ? 가 아니라, 같은 조건이라면 "캐나다에서 행복해 질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을것이다" 라는 것이다.
우선 교육문제. 캐나다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한참 성장하고 많은것을 보고 느끼고 배워야 할 아이들의 성장 가능성을 열어줄 기회, 그리고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아이들을 키울수 있는 그러한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질 것 같다. 빡빡한 학교 수업과 방과후 교실/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한국의 현실과는 다르게, 이 곳 캐나다에서는 방과후에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별로 없을 뿐더러 대부분 Sports Activity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좀 과할 정도의 칭찬을 통해서 의욕을 북돋아 주는게 일상화 되어있고, 친구들의 장점이 보이면 다들 질투를 하기 보다는 "Amazing~~!" 하며 다들 감탄사를 연발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한국의 교실문화와는 차이가 커 보였다. 발표회를 하게 되면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같은 곡으로 집단군무를 가르켜서는 질서정연하게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러야 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비록 어눌하더라도 각각의 개성을 살려서 각자 열심히 준비한것을 1명씩 나와 선보이고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어른인 내가 봐도 배울만한 점이었다. 캐나다 학교에 보낸지 몇일 되지 않아, 아이들에게 '학교'라는 곳이 주말만 되면 빨리 가고싶어지는 장소가 되어버린건, 가히 놀랄만한 변화다.
서울에서 둘째아이 연준이가 불과 초등학교 1학년이던 시절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이 뭔가 잘못을 할때마다 일괄적으로 나눠준 수첩에 있는 꽃잎스티커를 하나씩 떼어서 집으로 가져가게 하여 얼마나 잘못했는지 학부모가 억지로라도 알게 했었다. 꽃잎이 하루에 2-3개씩 강제로 뜯긴 상태에서 집에 돌아오면 나랑 와이프는 학교에서 무슨 잘못을 했는지부터 추궁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알고 보면 그 잘못은 대부분 수업중 뒤를 돌아봤다 거나, 친구랑 잡담을 좀 했다거나 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유치원을 갓 졸업한 1학년 아이들인데,,, ) 그 반 선생은 "잘못을 하지 말아라, 잘못하면 부모한테 다 이를꺼고 넌 혼날꺼야~" 라고 은연중에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연준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 기억이 안난다고 거짓말을 할때도 있었고, 학교에서 꽃잎 스티커가 뜯기는 경험은 학교를 가기 싫은 곳으로 만들 뿐이었다. 부모에게도 그 스티커가 뜯겨 나간 자국은 한참 행복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의 마음에 강제로 흠집을 낸 상처로 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잘한것을 칭찬해서 더욱 잘하게는 못할 망정, 집단을 통제하기 위해 강제로 만든 규칙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아이들의 기를 죽이고 반성하게 하는 문화가 우리 교육현장에서는 당연한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누굴 위해서일까 ?
온갖 사교육과 반복되는 주입식 교육, 더 나아가 소위 말하는 SKY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철저하게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해야 하는 현실속에서, 얼마전 출장길 기내에서 봤던 "Spare Parts" 라는 영화는 참 많은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실화를 근거로 한) 고등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그린 영화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그 영화속 현실을 한국속으로 가져온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 상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뛰어놀수 있는 학교, 그리고 친구들,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캐나다 학생들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부모 또한 사교육의 부담을 덜 느끼고,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한국에서 보다 더 많이 접하게 된다.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교육환경에 비추어 볼때 아이들이 한국에서 보다는 더 행복해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2015/02/17, 추운 겨울날 아침, 학교 등교하자 마자 운동장에서 눈썰매를 타며 뛰어노는 아이들)
직업의 귀천 ? 실례로 한국에서는 아파트 경비에게 폭언 욕설을 일삼아 경비가 자살하는 일도 발생하는 등, 직업의 차별, 갑을 관계가 확실한 반면, 캐나다에서 내가 접한 Security 는 관리 Rule 에 따라 엄격하게 움직이고, 이 Rule 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입주자에게는 정정당당하게 경고 멘트를 날릴수 있는, 자기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하나의 직업인일 뿐, 입주자가 함부로 대할 존재가 아니었다. 심지어 콘도의 복도를 청소하는 사람에게도 어느 누구하나 함부로 대하거나 폭언을 할 수 없는 사회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오히려 언제든 반갑게 인사하고 지내는 공생관계의 또다른 사회적 존재일뿐.
최근 여러모로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안전문제. 캐나다에서는 과할 정도로 그 안전을 중요시 한다. 하교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갔을때 먼발치에서 부모인 내가 서서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와서 인계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하여 아이를 철조망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며, 하교를 위해서 부모들이 주차해놓은 차량의 앞쪽으로만 다니도록 관리하고, 학교 스쿨버스가 정차하면 탑승하는 동안 그 어떤 차량도 스쿨버스를 가로질러 갈수 없게 만들어 놓고 rule 을 위반하는 차량에게는 엄청난 ( 200만원 ?) 벌금을 부과하게 하는등, 아이들 보호에는 답답하리만큼 철저한 안전의식이 기본적으로 몸에 배여 있는 곳이 캐나다이다.
물론 캐나다에서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한인들도 많이 있으리라 본다. 조그만 지하 단칸방 구해서 아침일찍부터 밤늦게 까지 힘든 일을 하거나, 임시직으로 일을 하면서 겨우겨우 생활을 이어가는 그러한 사람들도 분명 있겠으나, 여러가지 사회적인 장치들을 볼때 한국에서 삶 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할 가능성,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가능성은 캐나다가 더 높지 않을까 ? 캐나다에서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 온갖 갑(甲)질이 난무하는 한국에서는 더 힘들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
세월호 사고가 난지 1년이 넘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어린 학생들이 구조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세월호 사고로 이쁜 자녀들을 잃은 부모들이 답답하다 못해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위해서 발버둥을 치면, 배후에 조정하는 세력이 있다느니, "종북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 최루탄을 쏘고 전투경찰들로 제지하기 바쁘다. 과연 세월호 같은 사고가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 일어났으면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 자동차에 허가받지 않은 카시트를 장착시 벌금을 부과하고, 스케이트장에도 안전협회같은 곳에서 허가하지 않은 헬멧을 착용하고는 들어갈수도 없고, 돈을 내고 등록한 수업 첫날 착용했던 헬멧의 조그만 턱끈이 하나 없다 하여 수업자체를 못받게 했던 우리 아이의 사례를 볼때, 세월호 같은 사고는 아마도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사건이지 않았을까 ?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라면, 그깟 턱근하나 때문에 수업을 못받게 하는 건방진 안전요원들에게 삿대질을 하고 돈도 냈는데 무슨 소리냐면서 큰소리 치는 부모가 나타날수도.
소중히 키워온 내 딸, 내 아들이 주입식 교육체계 하에서 즐겁게 뛰놀지도 못하고 사교육과 친구들과의 순위 경쟁속에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나라의 허술한 안전망으로 인해서 그토록 어린 나이에 어느순간 목숨을 잃게 된다면 얼마나 이 나라가 원망스러울까 ? 가히 상상도 하기 싫다.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546296&code=61131111&cp=nv )
MERS 질병의 초기단계에서 우왕좌왕 하고 ,질병이 발생한 병원을 숨기기에 급급하다가, 결국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주지 못하고 있는상황에서, 캐나다 자국민을 납치했던 범인을 끝까지 추적해서 체포하는 캐나다의 사례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느끼게 한다.
OECD 통계 요약
1. 자살률 1위
2. 산업재해 사망률 1위
3. 가계 부채 1위
4. 남녀 임금격차 1위
5. 노인 빈곤률 1위
6. 청소년 흡연률 1위
7. 성인 흡연률 1위
8. 가장 낮은 최저임금 1위
9. 저임금 노동자 비율 1위
10. 보행자 교통사망률 1위
11.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률 1위
12. 학원시간 가장 높은 순위 1위
13. 환경평가 뒤에서 1위
14. 어린이 행복지수 낮은 순위 1위
15. 청소년 행복지수 낮은 순위 1위
16. 이혼 증가률 1위
17. 대장암 사망률 1위
18.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1위
19. 노령화 지수 1위
20. 국가채무 증가율 1위
21. 공공 사회복지 지출 비율 낮은순 1위
22. 실업률 증가폭 1위
23. 대학교육 가계 부담 1위
24. 낙태율 1위
25. 사교육비 지출 1위
26. 15세 이상 술 소비량 1위
27. 독주 소비량 1위
28. 출산률 가장 낮은 국가 1위
29. 근무시간 많은 국가 1위
30. 세부담 증가속도 빠른 국가 1위
31. 사회안전망 안좋은 순위 1위
32. 정치적 비전이 안좋은 국가 순위 1위
33. 고등교육 국가 지원비율 낮은 순위 1위
정말 대단한 통계수치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2시간마다 3명씩 자살하고 있고 (하루 기준으로 약 40명), 유치원에 입학시키려고 새벽에 부모가 줄을 서서 대기하는가 하면, 태어나자 마자 국공립 보육시설에 대기하지 않으면 들어가기도 힘들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왜 한국사람들은 이러한 한국에서 사는게 좋다고 생각하는걸까 ? ( 아마도 당장 내 눈앞에 닥쳐올 외국어의 장벽때문이 아닐까 ? 수십만 교민들이 다들 원래부터 영어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던가 ? )
한국사람이 꼭 한국에서 살아야 행복할까 ? 아닌것 같다. 언어의 문제는 정말 사소한 걸림돌에 불과할 뿐, 한번 살다가 가게 될 인생.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 질 가능성이 높은 환경이 있다면 그곳에서 사는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 물론 행복해질 가능성을 취하는 대신 포기해야 할 것들은 과감히 포기해야 겠지만.
"그래도 한국사람은 한국에서 사는게 가장 좋지 ~" ,, 이 말을 들을때면 공감하던 나였으나, 이제는 전혀 공감을 못할것 같다. 그냥 익숙한게 편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속에 내 뱉는 말일 뿐이다. 익숙한건 변하기 마련이다.
10년넘게 한국에서 운전하고 다니다가 캐나다에서 불과 2개월 운전을 좀 했다고 한국에 돌아와서 운전대를 잡고 도로에 나갔을때의 그 어색함을 아직 잊지 못한다. 불과 두달사이에 캐나다의 교통문화체계와 운전습관이 몸에 더 익숙해졌던것이다. 지금은 또 다시 한국의 교통문화와 운전습관에 익숙해졌지만, ,, 익숙한것은 지금 현재 느끼는 감정일 뿐인것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곳이 있다면 내가 한국사람라고 해서, 익숙한게 편하다 해서 그리고 낯설음이 불편하다 해서 그 행복하게 살아갈 그곳을 꼭 한국이라고 고집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다.
'한국사람이 한국에서 사는게 제일 행복하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의 한계를 이 한국이라는 땅덩어리에 국한시키지 말고, 여/건/이/된/다/면 단기 기간이라도 자녀들과 함께 보다 더 넓은 땅덩어리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많은것을 보고 느껴보길 적극 권하고 싶다. 물론 우리 가족과 같이 단기 학생비자 또는 방문비자 신분의 외국인으로서 캐나다에서의 임시로 거주하면서 보고 느끼는 것과, 실제 영주권자가 되어서 삶의 터전으로서 캐나다에서 느끼는 삶의 치열함은 차이가 있을것 같긴 하다. 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고, 실제로 나이를 불문하고 수많은 한국인이었던 사람들이 그 넓은 캐나다 땅덩어리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거꾸로, 한국이 아닌 아메리카대륙의 American/Canadian 들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의 유학생활을 하기위해, 또는 평생터전으로 삼기 위해서 한국에 오려고 준비를 할까 ? 이민이나 유학을 꼭 가라는 말이 아니라, 다만 나의 활동반경을 그 사소한, 그리고 시간과 노력만 있으면 해결될 '언어의 장벽' 때문에 한국이라는 나라에 꼭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본인과 나의 와이프는 나름 남들 부러워하는 대학을 나와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두 아이들과 적당히 큰 부족함없이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족이다. 나름 행복하다고 매 순간 느끼지는 않아도,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캐나다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한국에서보다 더,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기회가 그곳에는 더 많으리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나와 와이프의 세대는 이미 늦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이제 두달뒤면 짧다면 짧은 1년간의 유학생활을 끝내고 가족들이 한국에 들어온다. 비록 유학 생활동안 한국이었으면 쓰지 않아도 될 많은 돈을 쓰면서 생활을 했지만, 아이들에게도 아이엄마에게도 돈과 바꿀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경험은 수년간 준비했었던 "유학" 이라는것을 실행에 옮긴 기회로 보고, 그 기회의 시간동안 보고 느낀것을 토대로 보다 더 진지하게, 보다 더 행복해 지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할것 같다.
비록 내가 있는 곳이, 앞으로 죽을때까지 살아야 하는 곳이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은 캐나다 같은 나라가 아닌, OECD국가 통계를 볼때 온갖 나쁜거 1위 투성이인 한국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주어진 환경에서 보다 더 행복하게 살기위한 고민은 해야 할것 같다. 저 멀리 저 넓은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보다 여유있고 행복한 삶의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배가 아파서라도 좀 더 행복해지도록 노력하고 싶다. 내가 지금보다 더 행복해 질 가능성이 없다면, 한참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만이라도 좀 더 행복해 질수 있는 기회를 더 주고 싶은 마음이다.
행복해지길 기다리기에는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갈것 같다. 딴지일보 총수인 김어준 총수의 말이 생각난다..
"인생은 졸라 짧다. 지금 당장 행복해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