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이 완연한 강화도의 전등사에 다녀왔습니다. 한때 템플스테이를 갈까 알아봤던 곳으로,
작은 크기의 대웅전에 비해서 사찰이 넓게 위치해 있고 뒷산에는 진달래, 벚꽂. 개나리등이 펴 있어
조용히 나들이 다녀오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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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신라로 불교를 전파하러 가던 아도화상이 잠시 머무르며 지은 절로 옛날 이름은 진종사라고 한다. 전등사라는 지금의 이름은 고려 말 충렬왕 비인 정화궁주가 이곳에 옥등을 시주한 것 때문에 붙여졌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광해군 때 절에 화재가 나 건물 대부분이 전소되어 새로 건물을 짓게 되었는데,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웅전 공사를 맡았던 도편수가 절 아래 주막 주모와 사랑에 빠져 번 돈을 모두 가져다 주었는데 공사를 마칠 무렵 주모가 도망을 갔고, 이에 도편수는 평생 부처의 말씀을 들으며 죄를 뉘우치기를 바라며 대웅전 처마 네 귀퉁이에 주모의 형상으로 나녀상을 새겨 놓았다는 이야기이다. 전등사를 돌아가며 주변으로는 성이 쌓여 있는데,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 정족산성이다. 삼랑성 동문으로 들어가면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이곳으로 유인해 물리쳤던 것을 기념하는 승전비를 찾을 수 있다. 조금 더 오르면 절의 입구로, 서해 바다의 드나듦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이름 붙은 대조루가 나오며 그 아래를 지나 오르면 나녀상이 있는 대웅전이다.
절 한쪽으로 전등사 범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 아닌 송나라 때 만들어진 중국 종으로 용두에 음통이 없는 것이 우리 종과 구별된다. 선조 때 마니산에 사고를 설치해서 실록을 비롯한 왕실의 중요한 서책을 보관하다, 헌종 때 전등사가 자리한 삼랑성 안에 사고를 만들어 그 책들을 옮겼다.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의 의궤 등 많은 서책이 프랑스군에게 약탈되었으나, 이곳에 보관되던 조선왕조실록은 다행히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전등사 뒤로 조금만 오르면 복원해 놓은 정족산사고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