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Blog
나이 50살이 되면서 보이는, 그리고 느껴지는 변화들
6cne.com
2024. 2. 16. 13:20
어느덧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나이가 세월이 흘러가는 속도 같다는 말이 실감 난다.
회사원 입장에서 보면, 신입사원이 되어 집합 교육을 받을 때가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새 은퇴를 염두에 둬야 하는 선임 직급이 되어버렸다. 가정에서는 아이 아빠가 된다는 게 실감이 되지 않던 때가 생생한데, 기저귀 갈아주던 그 아이는 어느새 성인이 되었고 코딱지 만하던 아들놈은 나보다 덩치가 커졌다
나이 50이 되어가면서 시간을 갖고 곰곰이 돌이켜 보면, 지금 당장에는 느끼지 못하는 변화이긴 하지만 꽤 많은 변화가 나에게 오고 있다.
- 노화에 따른 신체적 변화
일상생활을 하다 상처가 생겼을 때 후시딘+대일밴드의 조합으로 금방 재생되던 피부가, 언제부터인가 상처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영구적인 상처로 남는 경험을 빈번히 하게 된다. 게다가 휴대폰에 표시되는 글씨의 폰트 크기가 점점 작게 느껴지거나 가까운 근접거리의 작은 글씨는 아예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노안이 오기 시작함을 느낀다. 건조한 피부로 인해서 매년 허물을 벗듯 피부 말단에 위치한 손가락이나 발뒤꿈치 등은 각질이 벗겨지기 일쑤고 때로는 피부 갈라짐으로 피가 나기도 하는 등의 경험을 하게 된다.
주 4-5일 고강도의 웨이트트레이닝과 균형잡힌 식단, 하루에 10종이 넘는 영양제 섭취, 그리고 금주와 금연의 생활화 등 따지고 보면 비현실적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본인이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신체변화는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 노화에 따른 생활 패턴의 변화
이러한 노화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생활습관에서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중의 하나가 선크림의 생활화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들이를 나갈 때면 뽀얀 아이들 피부가 탈 까 걱정되어서 선크림을 잔뜩 발라주곤, 정작 나는 불쾌한 느낌 때문에 선크림을 멀리했던 나였다. 하지만 나이 50을 바라보며 언제부터인가 매일 오전 선크림을 바르는 것과 더불어, 매일 운전하는 차나 회사의 사무실에 항상 비치해야 할 물건 중의 하나가 되었다. 더불어 피부 상처 관리를 위한 듀오덤 같은 물품 또한 출퇴근 가방에는 빠져선 안될 물건이 되었다.
- 친구/동료들 모임에서 대화 주제의 변화
명절 때마다 만나는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시, 대화의 주제에 “건강”이라는 것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술과 담배를 끼고 살고 건강에 1도 신경 안 쓰던 친구들 조차 식단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운동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등의 주제로 얘기를 먼저 꺼내는 것을 보게 된다.
삶을 비관해서 자살을 했다는 건너 건너 친구의 마음 아픈 소식,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부터 시작하여 병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 암에 걸려 벌써 고인이 되었다는 친구들의 소식도 간간히 들린다. 세월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삶 자체가 생존으로 인식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노화'라는 것을 직감하는 시기가 되면서 건강에 대한 시각 자체가 바뀐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향 친구들과 한참 놀던 그때 당시 부모님의 연배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 성격의 변화, 철드는 건가?
나이가 들면 여성화된다고 했던가? 정말 실감이 난다. 나의 측근에 있는 아이들, 와이프가 나의 현재 기분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나의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을 얘기할 때엔 핏대를 세워가며 목소리를 높이고 언성을 높이던 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감정 변화의 폭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회사에서 위치가 올라가면서 감정의 변화폭을 최소화하는 연습을 하기도 했더니와, 나보다 더 감정변화가 심한 청소년기 아이들을 키우면서 접한 여러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대체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봐 온 탓일까? 때로는 감정변화가 심한 나의 내적인 모습, 감정변화가 적은 차분한 외적인 나의 모습, 이 2가지 모습으로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곤 한다. - 자녀들에 대한 애착 감소 및 와이프에 대한 애착 증가
돌이켜 보면 아이들이 품안의 자식이 아니라고 느껴지기 시작한 건 딱 초등학생 때까지였던 것 같다. 아빠의 말이라면 가정 내 헌법과도 같은 규율로 생각하고 잘 따르던 아이들이, 중학생 사춘기를 거치면서 평소 하지 않던 반항을 하게 되고, 꾸지람이 심할 때면 심한 욕설과 비속어를 내뱉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했으나 반복되는 아이들의 일탈과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인해서, 이젠 정신적으로 통제를 할 수 있는 품 안의 자식이 아니구나 하는 순간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정이 떨어질 때가 종종 있다.
게다가 아이들의 사적인 공간(친구들과의 관계, 휴대폰 잠금, 자녀방 출입 등)에 대한 높은 장벽이 생겨나고 성인과 같은 수준의 단어, 대화,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마냥 귀엽다고 토닥토닥해 주는 예전의 그런 아이들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겨나게 된다. 일상에서 자녀와의 관계에서 '서운함'을 느끼는 순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해맑게 웃고 아빠엄마를 따르던 아이들에 대한 애착은 자연스럽게 감소하게 되고, 그 애착의 빈자리를 와이프가 차지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정이라는 사회 안에서, 아이들과 마찰이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와이프밖에 없으니 말이다.
- 배우자의 위상 변화
결혼 할 때부터 맞벌이였고, 현재도 맞벌이다. 집안일은 공평하게 하는 게 맞으나, 나는 거의 매일같이 운동을 하기도 하고 유튜브 영상 편집등의 여러 핑계로 와이프의 참여도가 월등히 높았던 게 사실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와이프가 한 번씩 “젊을 때 나한테 잘해. 나중에 나이 들어 버림받지 않으려면...”이라고 툭툭 한마디 던지곤 하는데, 이 말이 예전 같으면 한쪽 귀로 들어와서 한쪽귀로 흘러 나갔을 말인데 이젠 다르다.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나서서 빨래/설거지/청소를 하는 일이 늘어났다. 진작에 이랬어야 했는데 나이 들면서 조금씩 깨닫고 더 실천하게 된다.
와이프가 한 번씩 하는 잔소리가 예전에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생각이 되었지만, 이제는 좀 다르다. 나의 평온한 삶을 위해 새겨둬야 할 사항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나이 들면서 와이프의 위상이 더 올라갔다고 해야 할까?
예전 같으면 와이프가 깎아 대접해 주는 과일 한 접시가 당연하게 느껴졌을 텐데 이제는 다르다. 그 한 접시가 너무 고맙다. 아이들에게만 과일접시가 갈 때엔 서운하기도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참아야 한다. 나도 챙겨주면 그저 고마운 것이다.
와이프 손에 짐이 들려 있는 모습을 일상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데, 예전에는 내 눈에 와이프 손에 어떤 물건이 들려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드디어 그 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블로스의 개'처럼 와이프 손에 짐이 들려있으면 말없이 나서서 들어주는 훈련이 몸에 익은 것이다 같다. 그만큼 내 마음속에 와이프의 위상이 달라진 것이다. - 좁혀지는 인간관계
나이가 50이 되어가다 보니 여러 환경적인 이유로 살아가는 패턴, 사고방식, 관심사들이 점점 격차가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오랜 기간 알아온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민감한 주제는 기피하게 되고 어느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건강'과 같은 주제로 얘길 하는 게 편해진다.
가끔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잠시 좁은 공간에 나와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나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하고 이질감을 느낄 때가 많아진다. 경제적인 수준의 차이, 성향의 차이, 가정환경 차이 등으로 그 격차가 커지니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의도적으로 인간관계를 좁히고 있진 않으나 젊을 때처럼 애써 많은 사람들과 좋은 Network을 쌓아두겠다는 의지가 많이 약해진다. 나와 공감대가 거의 없거나 사고가 전혀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쓰는 시간조차도 조금은 아깝게 느껴지다 보니, 굳이 다수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나의 삶에 큰 부족함이 없는 관계로, 나의 한정된 시간과 돈을 공유할 상대방의 수를 줄여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을 때엔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면, 나이들면서 '나'에 대해서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이기적인 삶과는 조금은 다르다. 뭔가 선택을 해야 할 때 가능하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순간이 많아진다는 얘기다.